새벽잠을깨우는.....
앞산 뻐꾸기는 벌써 10여 일째 새벽부터 울어대고, 아마도 저놈이 어느 텃새둥지에 托卵을 한 듯 합니다. 아니면 이미 부화하여 自身을 품어주고 먹여준 텃새어미를 버리고 둥지를 뛰쳐나갈 새끼에게 내가 너의 진짜 어미임을 계속 알리려는 신호음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뻐꾸기란 놈의 托卵 습성을 가리켜 “바람난 못된 지어미”로 비유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놈도 참 측은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오죽하면 제 새끼 한번 품어보지 못하고, 먹여보지도 못하고 저리도 목이 터지게 울어댈까?
오히려 뻐꾸기 새끼를 품은, 둥지 主人인 텃새의 품고 먹이는 情이 幸福해 보이고 부러워 우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 人間事 세상살이도 저 뻐꾸기와 같은 人生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他意든 自意든 父母와 子息이 家族이라는 한 울타리에서 喜悲를 나누지 못하고 限을 품고 살아가는 어미와 子息 이야기를 들을 때면, 누구는 나쁘다고 손가락질 할 수 없는 自身들만의 業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이 이 새벽, 선잠을 깨이게 합니다.
신영복님의 獄살이 이야기를 이번에는 깨어있는 마음으로 읽어보려고, 또 읽었습니다.
‘88. 5. 30字 마지막 엽서의 표제가 “새끼가 무언지 어미가 무언지”입니다.
그분이 이십 년간을 獄에서 흔들림과 변함없이 자신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어미와 자식”이라는 보이지 않는 因緣의 끈이 있었음으로 하여 가능하였지 않았을까?